예술의 섬 나오시마 |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이 있는 섬
쿠사마 야요이 · 안도 타다오 · 후쿠다케 소이치로
쿠사마 야요이와 땡땡이 호박
빨간 호박
1994년부터 나오시마에 전시된 호박 조형물은 이제 섬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배를 타고 다카마쓰(高松)에서 섬으로 향하면, 도착지인 미야노우라 항에서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이 바로 쿠사마 야요이의 ‘빨간 땡땡이 호박’입니다.
커다란 호박에는 여러 개의 구멍이 뚫려 있어 관람객이 직접 내부로 들어가거나 밖을 내다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마치 거대한 놀이터처럼 아이에게는 모험의 공간이 되고, 어른에게는 동심을 깨우는 체험형 예술 작품으로 다가옵니다.
빨간 호박 외에도 쿠사마 야요이 특유의 빨간 땡땡이 패턴이 덧입혀진 버스와 페리가 실제로 운행되고 있습니다. 섬 곳곳을 오가는 교통수단마저 예술의 일부로 녹아들어, 나오시마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설치미술 작품처럼 느껴집니다.
땡땡이 무늬의 시작
쿠사마 야요이는 일본 나가노현에서 부유한 가정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전쟁 시절 군수 공장에서 낙하산 재봉일을 도우며 성장했고, 어린 시절의 불안과 억압은 그녀의 내면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정신적 불안을 겪었지만 가족은 이를 질병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폭력과 아버지의 가출로 고립된 쿠사마는 어린 나이부터 환각과 강박증에 시달리게 되었죠.
어느 날 식탁 위의 빨간 꽃무늬 식탁보를 바라보다가 그 무늬가 방 안 가득 번지는 환상을 경험합니다. 그때부터 그녀의 눈앞 세상은 무한히 반복되는 점과 패턴으로 변했고, 이것이 평생에 걸친 예술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쿠사마는 불안과 공포를 땡땡이 무늬로 시각화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갔습니다. 그녀에게 점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세상과 자신을 잇는 존재의 언어이자 무한 확장의 상징이었습니다.
노란호박
나오시마 바닷가 끝자락에 놓인 노란 호박은 섬을 대표하는 상징이자 가장 인기 있는 포토존입니다. 잔잔한 파도 위에 떠 있는 듯한 모습 덕분에 ‘인생샷 명소’로도 손꼽히죠.
2021년 8월 태풍 '루핏'으로 인해 노란호박이 바다로 떠내려가 손상되는 일이 발생했고, 1년 2개월 만인 2022년 10월 재난 상황에 대비해 소재의 내구성을 높인 노란호박이 복원되어 다시 제자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폐허의 섬을 예술의 섬으로
나오시마에는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뿐 아니라 베네세 하우스 미술관, 치추 미술관, 이우환 미술관, 그리고 이에(家) 프로젝트까지— 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예술 공간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이 처음부터 예술의 섬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한때는 구리 제련소가 방치된 폐허에 불과했던 나오시마. 그 변화를 이끈 인물이 바로 후쿠다케 소이치로 베네세 그룹의 회장입니다. 그는 섬을 매입한 뒤, 1992년 ‘베네세 하우스 미술관’을 세우며 ‘예술로 재생하는 섬’이라는 비전을 실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건축을 맡은 이는 노출 콘크리트의 거장 안도 타다오입니다. 정식 건축 교육 없이 독학으로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었으며, 나오시마의 미술관뿐 아니라 제주 본태박물관 역시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습니다.
버려진 섬을 세계적인 예술의 성지로 탈바꿈시킨 이 두 사람— 후쿠다케 소이치로와 안도 타다오 덕분에 오늘의 나오시마가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
나오시마를 여행하는 묘미는 단순히 작품을 보는 데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곳에서는 안도 타다오의 건축 자체가 하나의 예술로 기능하죠.
이우환 미술관은 입구부터 강렬합니다. 거대한 노출 콘크리트 벽이 미로처럼 이어지며 관람객을 안내하고, 위쪽으로 열린 하늘은 폐쇄감 대신 고요한 해방감을 선사합니다.
베네세 하우스 미술관은 숙박시설을 겸한 특별한 공간으로, 예술 작품에 둘러싸여 하룻밤을 보내는 낭만적인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치추 미술관은 마치 땅속에 숨겨진 요새 같습니다.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녹음 속에 삼각형과 사각형의 구조물이 박혀 있어 마치 군사 기밀시설처럼 보이기도 하죠. 지하에 묻힌 듯 설계된 이 공간은 자연과 건축, 예술이 완벽히 조화를 이루는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특히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이 전시된 전시실은 자연광 아래에서만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빛과 그림, 그리고 자신의 감정에만 집중할 수 있죠. 그 순간의 여운은 미술관을 나선 뒤에도 오랫동안 머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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